시작은 조용했다
4338년, 그러니까 양력으로는 2005년 어느 초여름. 다들 바쁘고 정신없던 그때, 우리 몇 사람은 조용히 머리를 맞댔습니다. 처음엔 작은 무크지 정도, 만화 좀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읽는 얇은 책자 하나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었죠. 그런데 막상 아이디어를 꺼내놓으니… 아, 이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습니다. 좁고 매니악한 취향, 그리고 동인지 수준의 파급력. 그건 우리의 첫 계획을 가볍게 무너뜨렸고, 다시 고민이 시작됐죠.
생각보다 많이들 기다리고 있었다
고민 끝에 “한국에서 만화 언론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한 게시판에 조심스레 던졌습니다. 정말 푸념 반, 희망 반이었어요. 그런데 놀라웠죠. 생각보다 이 질문에 반응하는 이들이 많았거든요. 관심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야기가 깊어지고, 토론이 붙고, 어느새 질문은 제안으로 바뀌었죠. “그럼 우리, 해보는 거 어때요?”
‘만(漫)’이라는 이름, 그리고 그 뜻
그렇게 태어난 게 바로 『만』입니다. ‘만화’에서 따온 이름인 건 맞지만, 뜻은 더 넓습니다. 질펀할 만(漫), 물이 넓게 퍼진다는 그 뜻처럼, 우리도 만화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들을, 그 안에서만 맴도는 게 아니라 바깥으로 퍼뜨리자는 생각이었어요. 만화계 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누가 들려줘야 세상에 닿을 수 있잖아요. 우리 스스로가 그 역할을 해보자, 그런 마음이었죠.
무겁기보단, 가볍게
물론 정론지처럼 뭔가 ‘무게 있는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우리가 느낀 건, 그 ‘무게’라는 게 사람을 밀어내기도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린 반대로 생각했어요. 조금은 가볍고, 넓고, 쉽게 이야기하자고. 만화영화도 좋고, 드라마도 좋고, 성우 이야기든, 음악이든, 만화랑 연결될 수 있다면 뭐든 꺼내놓자고. 그렇게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나중엔 그 중심에 있는 ‘만화’ 자체에 눈을 돌릴 수 있게 만들자.
결국, 이야기하는 사람들
『만』은 누가 뭐래도 ‘이야기하는 입’입니다. 동시에 귀이기도 하죠. 만화라는 주제는 변함없지만, 그걸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끌어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아직 우리가 하는 일이 작고 느려도, 그 방향만은 분명합니다.
한 발짝, 그 다음을 위해
앞으로도 『만』은 만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낼 겁니다. 그게 아주 짧은 감상문이든, 날카로운 비평이든, 현장의 뒷이야기든 말이에요. 그래서 어느 날, 만화가 더는 ‘매니악한 취미’가 아니라 누군가의 일상, 혹은 생각의 중심이 되기를. 그 가능성을 위해 지금도 천천히, 하나씩, 준비 중입니다.


